제4장

서설요는 그가 신혼집까지 꾸밀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신혼집 안에 레터링 풍선과 꽃으로 장식된 것을 보고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 옷방은 오른쪽이야. 쭉 들어가서 돌면 욕실이고. 당신이 먼저 씻을래, 아니면 내가 먼저 씻을까? 그것도 아니면, 같이 씻을까?”

남자는 마침내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지만, 몸을 살짝 기울여 그녀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서설요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겁을 먹은 것이다. 새하얀 뺨이 붉게 물들었고, 그녀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반응을 본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왜, 나랑 스킨십할 생각은 안 해봤나?”

“고명재 씨, 우리…… 위장 결혼 아니었나요?”

“누가 위장 결혼이래?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고명재는 눈썹을 치켜떴다. 그의 말투에는 불쾌함이 섞여 있었다.

서설요는 문득 임시원과 그 여자가 뒤엉켜 있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자신의 여자친구를 무척 사랑하겠지!

그래서 임시원이 자기 여자친구와 잔 것에 그토록 화가 난 걸 거야. 단순히 자신과 결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분명 자신과도 자야 직성이 풀리겠지.

“사실, 저랑 임시원은…… 그 사람이 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서설요가 힘없이 설명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기 엄마 말을 듣고 아들을 낳아야만 혼인 신고를 해주겠다고 하거나, 저희 할머니를 결혼식에 못 오게 하진 않았을 거예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남자가 물었다.

서설요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임시원이 여자친구를 뺏어간 걸 증오하더라도, 나랑 자는 걸로는 복수가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임시원은 나를 그만큼 신경 쓰지 않으니까, 슬퍼하지도 않을 거라고요!’

하지만 이런 말들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씻으러 갈게. 당신은 먼저 여기 익숙해져.”

남자는 몸을 돌려 자신의 옷방으로 들어가 잠옷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

서설요는 욕실에서 들려오는 ‘쏴아아’ 하는 물소리에 더욱 긴장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이곳 환경에 익숙해지라고 했는데, 뭘 익숙해지라는 걸까?

고작 침실일 뿐인데, 익숙해질 게 뭐가 있람!

그가 말한 옷방 역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도, 그녀는 문 앞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그녀의 옷방으로 들어가 금세 잠옷 한 벌을 들고 와 건넸다.

“씻어.”

“저는…….”

“얼른 가!”

남자의 말투는 거절을 용납하지 않았고, 약간의 짜증이 섞인 듯했다.

서설요는 조금 두려워져, 황급히 손을 뻗어 잠옷을 받아 들고는 쏜살같이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빨리 달려가는 그녀를 보며 남자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로 겁먹은 토끼 같군!

그는 겁먹은 토끼가 아주 느릿느릿, 한참을 꾸물거리다 욕실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책 한 권을 집어 펼쳐 들고, 책의 절반쯤 읽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고작 십여 쪽을 읽었을 뿐인데, 그녀가 안에서 나왔다.

“고…… 고명재 씨, 저는 어디서 자요?”

토끼는 침대 옆에 서서 물기 어린 큰 눈을 깜빡이며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명재는 손에 든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서설요는 무척 아름다웠다. 얼굴은 수려하면서도 대범한 느낌을 주었다. 콧날은 자그마하면서도 오뚝했고, 입술은 붉게 칠하지 않아도 붉었다. 현대적인 세련미와 한국화 같은 고전적인 운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아름다움이 한데 어우러져 어색해야 마땅했지만, 오히려 무척이나 조화로웠다.

그녀의 피부는 희고 보드라워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고, 예쁜 쌍꺼풀 아래 길고 짙은 속눈썹은 그녀의 눈동자를 더욱 깊어 보이게 했다. 마치 떨어진 아름다운 검은 봉황의 깃털처럼, 연약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어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설레게 했다.

오래 보고 있으면 마음속의 조급함마저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 와.”

그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그녀에게 침대로 올라오라고 권했다.

서설요의 얼굴이 ‘확’ 하고 붉어졌다.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리 와.”

남자가 다시 한번 권했다. 이번에는 말투에 강경함이 살짝 묻어났다.

서설요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키지 않고 긴장됐지만, 일단 가서 차근차근 설명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몸을 숙여 그녀를 덮쳤다.

“고명재 씨, 당신…… 이러지 마세요. 이렇게 해도 임시원은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

서설요는 겁에 질려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울먹였다.

“이런 상황에 왜 그 자식 얘기를 꺼내?”

고명재는 몹시 불쾌해하며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눌렀다.

서설요는 억울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런 강압적인 행동에 그녀는 더욱 불안해졌다.

“착하지, 무서워하지 마.”

남자의 말투가 갑자기 더없이 다정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가에 입을 맞추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서설요는 눈을 감았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원래 마음의 준비는 이미 끝냈었다. 단지 상대가 바뀌었을 뿐.

그저 그가 나중에 후회하며 자신을 원망하면 어떡하나 걱정될 뿐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졌다.

남자의 입술이 그녀의 뺨 위를 맴돌았다. 뜨거운 입맞춤이 피부에 불을 지피는 듯했고, 체온이 점점 달아올랐다….

아팠다.

살결이 맞닿고 뒤엉키는 것은 상상보다 더 아팠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며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착하지, 금방 괜찮아질 거야.”

남자는 그녀의 귓불을 머금고 여전히 달랬다. 목소리는 낮고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겼다.

고통에 섞인 짜릿함에 그녀는 어쩔 줄 몰랐다. 차라리 그의 어깨를 한입 깨물었다. 그렇게 하면 불편함이 좀 덜어질 것 같았다.

다음 날 정오, 서설요는 침대에서 깨어났다.

방 안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다. 처음 눈을 떴을 땐 한밤중인 줄 알았지만, 곧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무려 오전 열 시였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리며 온통 흔적이 남은 어깨가 드러났다.

얼굴이 붉어지며, 그녀는 황급히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쌌다.

방 안에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웠다.

어쩌다 이렇게 늦게까지 잔 걸까?

어젯밤 일을 생각하니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어제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당연히 그가 언제 끝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사모님, 일어나셨군요. 저는 지호라고 합니다. 앞으로 사모님을 전담해서 모시게 됐습니다.”

옷이 없어 어제 입었던 옷을 찾아 입었다. 문을 나서자 동그란 얼굴의 여자가 문 앞에 서서 깍듯하게 인사했다.

“저를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듣기 좀 어색하네요. 그냥 설요라고 불러주세요.” 서설요가 얼굴을 붉히며 멋쩍게 말했다.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도련님께서 들으시면 화내실 거고, 오 집사님께서 들으셔도 화내실 거예요. 사모님, 입고 계신 옷이… 좀 구겨졌네요. 새 옷으로 갈아입으시는 게 어떠세요? 아침 식사는 이미 준비되었으니, 옷 갈아입으시면 바로 식사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옷이 없어요.” 서설요가 말했다.

지호는 잠시 놀라더니, 황급히 일깨워주었다. “옷방에 전부 준비되어 있습니다. 혹시 안 들어가 보셨나요?”

서설요는 고명재가 오른쪽이 그녀의 옷방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지호가 제안했다. “제가 안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한번 보시겠어요?”

서설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가 그녀를 이끌고 옷방으로 들어갔다.

서설요는 그저 평범한 옷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어가 보고 나서야 알았다. 옷방 하나가 그녀가 살던 기숙사보다 두 배는 컸다.

각양각색의 디자인과 색상의 옷뿐만 아니라,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많은 보석과 장신구, 가방, 액세서리들이 있었다.

이게 어딜 봐서 옷방인가?

분명 명품 전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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